어제 늦은 오후, 이메일로 한 통의 제보가 왔습니다.
“서울대에서 미학을 전공하는 제 지인이 리움미술관 카텔란의 작품을 먹었습니다!“
제보자가 보내온 영상에는 20대로 보이는 한 남성이 벽에 테이프로 붙여놓은 바나나를 떼어내 맛있게 먹은 뒤 바나나 껍질을 그 자리에 다시 붙여놓는 장면이 담겼죠. 전시장을 지키는 직원의 당황한 목소리도 살짝 들립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문제의 바나나는 지금 리움미술관에서 성황리에 개최되고 있는 ’미술계의 이단아’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개인전 위(WE)에 출품된, 엄연한 ’작품’입니다. 카텔란은 이 작품에 ’코미디언(Comedian)’이란 제목을 붙였죠.
실제로 2019년 세계 최대 미술장터 ’아트 바젤’에 등장한 같은 제목의 바나나 작품이 1억 5천만 원에 낙찰되며 화제를 부릅니다. 심지어 팔린 뒤에 곧바로 한 행위예술가가 바나나를 떼어내 먹어치우는 바람에 더 큰 화제가 됐고요.
’사건’이 벌어진 시각은 어제 낮 12시 반쯤. 주인공은 서울대 미학과에 재학 중인 노현수 씨입니다. 전시장에 붙어 있는 바나나를 떼어내, 먹고, 껍질을 다시 붙이기까지 걸린 시간은 1분 남짓. 노 씨의 지인이 휴대전화로 이 장면을 고스란히 담았습니다.
당연히 미술관 관계자들이 달려왔겠죠. 미술관 측에서 왜 그랬느냐고 물었을 때 노 씨는 “아침을 안 먹고 와서 배가 고파서 먹었다.“고 했답니다. 노 씨가 다시 붙여 놓은 바나나 껍질은 한동안 작품처럼 전시장에 붙어 있었고, 30여 분 뒤 미술관 측이 그 자리에 다시 새 바나나를 붙이면서 이 작은 소동은 일단락됩니다.
노현수 씨는 KBS와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카텔란의 작품이 어떤 권위에 대한 반항이잖아요. 그런데 사실은 반항에 대한 또 다른 반항을 해보는 것일 수도 있고, 그리고 사실 제가 마지막에 껍질을 붙이고 나왔어요. 작품을 훼손한 것도 어떻게 보면 작품이 될 수 있을지 뭐 이런 것도 재미있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현대미술을 보면 이런 기획은 없었던 것 같아서, 장난삼아서 한 번 붙여놓고 나왔어요. 사실 먹으라고 붙여놓은 거 아닌가요?“
어쩌면 이것이 바로 마우리치오 카텔란 작가가 기대했던 게 아니었을까. 카텔란의 작품은 눈에 보이는 것 이상으로 지금 우리 현실을 진지하게 돌아보게 하죠.
시장에서 산 바나나가 버젓이 전시장에 작품으로 걸리고, 12만 달러라는 거액에 낙찰되고, 이미 팔렸는데 그걸 또 먹어버리는 일련의 과정이야말로 바나나 모습을 한 ’코미디언’이라는 작품을 통해 작가가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래서 사진에서 보이듯, 멀쩡한 바나나 대신 껍질을 본 관람객들은 정말 운이 좋았다고 할 수밖에 없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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